스파티필럼이 축 늘어지면 물 주라는 말, 그때는 이미 늦은 거예요
스파티필럼(Spathiphyllum wallisii)은 "목마르면 알려주는 식물"로 자주 소개돼요. 물이 부족하면 잎자루가 눈에 띄게 축 처지고, 물을 주면 서너 시간 만에 다시 서니까요. 반응이 워낙 또렷해서 그걸 물주기 알람처럼 쓰시는 분이 많은데, 저는 그 방법을 권하지 않아요. ■ 처짐은 알람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일이에요 잎이 처지는 건 뿌리가 빨아올릴 물이 다 떨어져서 잎 세포의 압력이 빠진 상태예요. 신호가 뜬 게 아니라, 이미 마른 뒤에 나타나는 결과인 거죠. 물을 주면 겉보기에는 멀쩡하게 돌아오지만 그 사이에 물을 실제로 빨아들이는 가는 뿌리(뿌리털)가 마르면서 조금씩 상해요. 이걸 몇 달 반복하면 잎끝이 갈색으로 타기 시작하고, 나중에는 물을 줘도 예전만큼 시원하게 안 서요. ■ 더 위험한 건, 뿌리가 썩어도 똑같이 처진다는 거예요 이게 제일 조심하셔야 할 부분이에요. 뿌리가 상하면 흙에 물이 있어도 못 빨아올려서, 물 부족일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축 처져요. 이때 "아 목마르구나" 하고 물을 주면 썩는 속도만 빨라집니다. 구분은 잎이 아니라 흙에서 해요. · 손가락을 흙에 2~3cm 넣어 보세요. 바싹 말랐으면 물 부족이에요. · 축축한데 처져 있으면 뿌리 쪽 문제예요. 흙에서 시큼하거나 퀴퀴한 냄새가 나는지, 화분을 들었을 때 유난히 무거운지도 같이 보세요. · 뿌리 문제로 보이면 물을 더 주지 마시고 화분에서 빼서 뿌리를 확인하세요. 건강한 뿌리는 희거나 연한 크림색에 탄탄하고, 상한 뿌리는 갈색·검은색에 만지면 물컹하고 껍질이 벗겨져요. 상한 부분은 잘라내고 물 빠짐이 좋은 흙으로 갈아 심습니다. ■ 그럼 언제 주나요 겉흙에서 2~3cm 아래가 말랐을 때, 화분 밑구멍으로 물이 흘러나올 때까지 충분히 주세요. 받침에 고인 물은 반드시 버리시고요. 스파티필럼은 흙이 바싹 마르는 것도, 계속 젖어 있는 것도 싫어해서 그 사이를 오가는 게 좋아요. "며칠에 한 번"으로 정하지 마세요. 특히 지금 9월은 여름보다 실내 온도와 증발량이 떨어지는 시기라, 8월에 쓰던 간격을 그대로 두면 같은 물이 훨씬 오래 남아요. 한국 실내 기준으로 이맘때부터 물주기 간격이 저절로 늘어나는 게 정상이에요. 간격이 아니라 흙 상태로 정하시면 계절이 바뀌어도 안 틀려요. 반대로 물이 마르는 속도가 유난히 빨라져서 처짐이 잦아진 거라면, 뿌리가 화분에 꽉 찬 것일 수도 있어요. 그건 물주기가 아니라 분갈이 쪽 이야기예요. ■ 잎끝이 이미 갈색이라면 한 번 탄 부분은 다시 초록으로 돌아오지 않아요. 보기 싫으면 마른 부분만 잎 모양을 따라 잘라내시고, 새로 나오는 잎이 깨끗한지로 판단하세요. 잎끝 갈변은 극심한 건조 말고도 수돗물 성분 축적, 낮은 습도 같은 게 겹치는 경우가 많아서 원인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려워요. ■ 반려동물·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스파티필럼은 천남성과(Araceae) 식물이라 잎과 줄기에 불용성 칼슘 옥살레이트 결정이 들어 있어요. 고양이나 강아지가 씹으면 입안과 혀가 심하게 따갑고, 침을 흘리거나 삼키기 힘들어할 수 있어요. 아이도 마찬가지고요. 대개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고 알려져 있지만 통증이 상당해서, 손이 닿지 않는 자리에 두시는 걸 권해요. 잎을 자를 때 나오는 즙도 피부가 예민한 분은 자극을 느낄 수 있으니 만진 뒤에는 손을 씻어 주세요. ■ 한 가지 더 하얀 꽃(정확히는 불염포)이 안 피는 건 물 문제가 아니라 대개 빛이 부족해서예요. 직사광선은 잎이 타니 안 되고, 커튼 너머로 밝은 빛이 드는 자리가 좋아요. 어두운 화장실이나 현관에 두고 "공기정화 식물이니까 괜찮겠지" 하시면 잎은 버텨도 꽃은 안 나와요. 정리하면 스파티필럼은 목마르다고 말해 주는 식물이 맞아요. 다만 그 말은 "지금 주세요"가 아니라 "아까 줬어야 해요"에 가깝습니다. 처지기 전에 흙을 한 번 만져 보는 습관이면 충분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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